하나님의 증언

9우리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거늘, 하나님의 증언은 더욱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10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그 증언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신 그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2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3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일 5:9-13)

요한1서 마지막 증언

오늘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부활절 일곱째 주일’입니다. 7×7=49이니, 이제 부활절 후 50일째가 되는 다음 주일이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이 올해 부활절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68주년 기념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5.18 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 주일’이기도 합니다. 부활절기, 교회창립, 5.18, 이 세 가지 주제 가운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 증언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가장 무게 있게 다가왔던 것은 앞의 세 주제가 아니라, 오늘 본문으로 주어진 ‘요한1서’였습니다.

성서 일과는 올해 부활절 둘째 주일부터 일곱째 주일까지의 서신서 본문을 요한1서에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총 6번에 걸쳐서 요한1서를 증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기회를 다 활용하지 못했고,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또한, 올해 대림절 전까지의 성서 일과 서신서 본문에는 요한1서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림절부터는 이후 3년 동안 구약성서를 본문으로 증언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오늘이 요한1서를 증언할 마지막 기회인데, 제가 요한1서를 증언하면서 꼭 드리고 싶었던 아주 중요한 말을 아직 못 드렸기에,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종교의 기원과 의미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신(神), 즉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를 ‘유신론자’라고 하고, 후자를 ‘무신론자’라고 하지요. 또 이도 저도 아닌,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불가지론자’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두고 논쟁하고 다투지만, 사실 하나님은 ‘존재’라고 하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범주 안에 넣어지면, 이미 신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 비존재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신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보다는,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그리고 ‘어떤’ 하나님을 믿지 않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무신론자 대부분이 믿지 않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이 말은 제가 무신론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지만, 만약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바꾸게 되면 삶 전체가 확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는 인간이 가진 실존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종교의 기원으로 봅니다. 불안과 공포가 인간 실존의 조건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그와는 별개입니다. 따라서 종교의 기원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사람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데서 종교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내 삶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과 의미라는 게 있나? 있다면 그게 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우리 인간의 노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선언한 요한1서는 종교의 의미에 관해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종교는 인류가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발전시켜온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 중 하나입니다. 종교의 기원을 ‘인간 실존’으로 보든 아니면 ‘의미 추구’로 보든 상관없이 인간은 역사 속에서 ‘신은 어떤 분인가’에 관해 묻고 답해 왔습니다. 성경에도 그 답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얘기는 원칙적으로 ‘은유’(metaphor)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은 하나님을 ‘목자’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이 정말 목자는 아닙니다. ‘산성’이나 ‘방패’라고도 부르지만, 하나님이 정말 산성이나 방패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목자라고 불렀을 때는 목자가 양을 돌보듯 돌보아주는 것을 가리키려고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산성이나 방패라고 불렀을 때는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분이란 뜻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가 목자나 산성이나 방패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은유적 표현의 특징입니다. “A는 B다”가 은유적 표현인데, 우리는 잘 모르는 A를 표현하고자, 잘 아는 B를 사용합니다. 앞 시편의 경우에는 잘 모르는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잘 아는 목자, 산성, 방패 등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1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은 요한1서 4장 8절과 16절 단 두 곳에서만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이것은 ‘은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A는 B다”라고 했을 때, B는 그 의미가 분명해야 합니다. 자명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그래야 A가 뭔지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B는 ‘추상명사’가 아니고, ‘물질명사’라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하고 표현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는 분이시다.’ 그런데 요한1서의 생각과 표현은 그것과 다릅니다. 요한1서는 분명히 “하나님은 사랑이다/God is love”라고 말합니다. 요한1서의 이 문장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을 안다

요한1서와 같은 요한계 문헌인 요한복음은 “하나님은 영이시다”(4:24)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 역시 은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靈, spirit)”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육(肉), 즉 물체(物體)나 물질(物質)이 아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1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1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2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일 1:1-2)

요한 공동체는 어떻게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을까요? ‘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했을까요? 그 답이 바로 4장 7-8절에 나옵니다.

7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곳은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요한1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어떻게 경험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 생각과 추론에만 의지해서는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권유한 다음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명사’입니다. 비록 그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여기서는 모호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명사일 뿐입니다. 한데, 이어서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추상명사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입니다.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물질명사’가 됩니다. 요한1서의 저자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추상명사에 그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실천될 때 물질화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물질화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말해 사랑이 그걸 실천하는 사람에 의해서 물질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1서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경험된다.”

하나님의 증언=성육신

이제 비로소 오늘 본문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증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언은 ‘자기 아들’에 관한 것이고, 그 내용은 ‘아들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는 사람은, 그 아들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이 말씀도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한데요, 앞의 설명을 전제하고 읽으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지고 경험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무엇입니까? 요한계 문헌에서 그것은 언제나 ‘성육신’을 가리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육’으로 왔습니다. 따라서 아들은 ‘성육신하신 하나님’(incarnated God)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추상명사인 ‘사랑’이 아들의 ‘육’으로 물질화됨으로써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면, ‘영원한 생명’, 즉 ‘다가올 시대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아들을 ‘믿는다’, 아들을 ‘모신다’는 것은 예수에 관한 신학적 주장을 믿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예수에게 ‘충실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가 그랬듯이 추상명사인 사랑을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으로서의 사랑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듯 사랑을 실천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그 하나님 경험은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사람, 사랑의 교회가 되자!

끝으로 부활절기, 교회창립, 5.18,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 오늘의 증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활의 삶이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이,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에게 듣고, 나와 접촉하면서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상’이 ‘물질’이 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랑을 과시하란 말이 아닙니다. 생각이나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교회창립 68주년 기념주일에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사회에 교회가 많이 있는데 왜 우리까지 있어야 할까요? 태어났으니까 그냥 살아가듯이, 생겨났으니까 그냥 존재해야 할까요? 우리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서 종교 생활을 한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와 목적도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목적은 우리가 매주 고백하는 ‘서울제일교회 신앙고백’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변화의 대상에 세상만이 아니라 우리도 포함됨에 유의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앞서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함께 갑니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가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우리가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이유도 세상의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처벌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악을 악이라 분명히 하고 악의 책임자를 분명히 밝히고 기억함으로써 다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그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으로서의 사랑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막연한 사랑이나 시혜적인 사랑을 넘어 근본적으로 나를 바꾸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해가면서 찾아야겠지요. 아무튼, 우리는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하나님의 증언을 깊이 간직하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