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말, 살리는 말

2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3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몸을 끌고 다닙니다. 4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5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6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7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8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11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12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물을 낼 수 없습니다. (약 3:2-12)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창조절 두 번째 주일인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야고보서 3장 1절로 12절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과 새번역 성경은 이 단락에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는 소제목을 붙여놓았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드리고 있는 예배의 순서에 “죄의 고백”이 없지만, 전례(典禮, ritual)를 중시하는 교회의 예배순서에는 “죄의 고백”이 있습니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행위로만 짓는 게 아닙니다. ‘생각’과 ‘말’로도 짓습니다. 세상 법정은 보통 행위로 지은 죄에 대해서만 정죄(定罪)하고 처벌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보통 행위로 죄를 지었을 때만 죄의식을 느낍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행위로 지은 죄뿐만 아니라, 생각과 말로 지은 죄도 문제 삼습니다. 그 이유는 ‘행위’가 빙산의 일각처럼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그 보이지 않는 밑바탕에는 ‘생각’과 ‘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 생각과 말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물이 행위입니다. 따라서 행위만 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생각과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죄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이 예수가 마태복음 5장 21절로 48절에서 말한 6개의 반대 명제(antithesis) 중 처음 두 명제입니다.

5:21“옛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2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27”‘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8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여기서 예수님은 ‘살인’과 ‘간음’이라는 악한 ‘행위’를 넘어 얼간이나 바보라는 ‘말’과 음행이라는 ‘생각’까지도 정죄합니다. 이 말과 생각 가운데 오늘 야고보서 본문은 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말을 다스려라!

제가 50대 초반 때 어떤 50대 중반의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목사님은 당시에 벌써 귀가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져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뿐 아니라 누구나 나이가 들면 눈과 귀에 이상이 오지요. 이건 병이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한 그 목사님의 명쾌한 해석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것들이 눈에 보인다고 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들린다고 다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이가 들어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못 보고 안 들리게 하신 것 같아. 한마디로 말해서, 다 보고 다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걸러서 보고 걸러서 들으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 같아.” 당시 저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구나.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이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배려구나! 불편한 게 아니라 때론 편리하고 요긴한 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사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지는 것은 못 볼 것을 보고, 안 들을 것을 들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뭔가를 보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또 귀가 얇아서 남이 하는 말에 휩쓸려서 우리네 인생이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까? 때로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야 좋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삶의 지혜고 연륜 아닙니까?

그런데 얄궂게도 하나님은 눈과 귀는 자연히 어두워지게 만드셨는데 입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이 사람의 기(氣)는 나이가 들면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사람의 기가 발 쪽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발발거리며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기가 점점 위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젊은이의 기는 허리쯤에 위치합니다. 젊은이가 sex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면 사람의 기가 얼굴에 집중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기가 아래에서 위로 이동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각 나이에 따라서 모여 있는 기를 잘 통제하느냐 못하느냐입니다. 기를 통제하면 유익하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문제가 됩니다. 반드시 큰 사고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인간에게 그 열매를 따 먹든지 안 따 먹든지 할 자유를 주셨듯이, 우리에게 기(氣)를 주시고 그것을 통제할지 통제 안 할지 그 자유도 주신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에 있었듯이, 우리가 기를 통제하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몸에 눈과 귀는 두 개요, 입은 하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눈과 귀는 두 개요, 입은 하나인 이유는 두 번 보고 한번 말하고, 두 번 듣고 한번 말하라는 뜻 아닙니까? 많이 보고, 많이 듣되 말은 적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9절은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야고보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말조심’과 ‘혀’라는 작은 지체가 대단하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혀’를 ‘악의 불씨’라고까지 말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이 신하 두 명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가장 선한 것’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두 신하는 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두 신하의 답은 같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혀’라고 답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혀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바꾼 말 한마디

지존파의 대부였던 청년이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17년 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께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꾸지람을 호되게 받았습니다. 나는 그 당시 너무나 가난해서 가지고 올 수가 없었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너는 왜 말을 듣지 않느냐?’라고 화를 내시면서 매를 때렸습니다. 나중에는 ‘준비물을 가져오라면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할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내 일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고 훔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도적질을 시작한 것이 내 운명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어린아이를 향한 말 한마디의 잘못이 이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향한 말은 그대로 그들의 인생에 뿌리 박혀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말은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악한 결과뿐 아니라 선한 결과도 낳습니다.

뉴욕의 53대 주지사는 ‘로저 롤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뉴욕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뉴욕 빈민가로 폭력, 마약, 알코올중독, 밀입국 등의 무법지대였습니다. 대다수의 흑인 어린이들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삶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란 로저 롤스가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폐허가 된 황무지에서 기적의 장미가 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뉴욕 주지사에 취임한 첫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나같이 질문했던 내용은 “당신을 주지사 자리까지 오르게 한 힘은 무엇이었는가?”였습니다. 로저 롤스는 수백 명의 기자 앞에서 그동안 자신이 했던 노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피어 폴 덕분에”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피어 폴은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1961년에 피어 폴은 노비타 초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반항적이었고, 선생님을 무시했으며, 학교 기물을 부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설득과 방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하여 흑인 아이들이 미신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손금을 봐주며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창문을 타 넘고 들어와 두 팔을 벌리고 교실을 빙빙 돌고 있는 로저 롤스를 본 교장 선생님은 “너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을 보니 장차 뉴욕 주지사가 되겠구나” 하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뉴욕 주지사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로저 롤스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칭찬의 말이나 장래에 무엇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롤스는 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전기에 감전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롤스의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장차 뉴욕 주지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로저 롤스는 ‘뉴욕 주지사’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는 진흙 속에서 뒹굴지 않았고, 불량배와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거친 말과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으며, 걸을 때도 뉴욕 주지사처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뉴욕 주지사의 신분과 품위에 맞는 실력을 기르고 말과 행동을 다듬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51세가 되던 해 정말로 꿈꾸어오던 주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말은 살아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습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가르쳤던 저의 스승 정태기 교수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은 반드시 그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온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 입 밖에 나오는 순간 / 말은 죽는다고

나는 말한다, 말은 / 바로 그날 / 살기 시작한다고.

맞는 말입니다. 말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계속해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다음과 같은 말을 우리는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주 쉽게 이 세상의 행복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외롭거나 용기를 잃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몇 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친절한 말을, 당신은 내일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생 동안 그것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일단 내뱉은 말은 살아서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말이 사람을 만듭니다. 또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나와 남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이 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살리는 말은 “사랑해요”, “고마워요”, “감사해요”, “최고예요”, “힘내세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다 잘될 거예요”, “죄송해요” 같은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남을 살리고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나도 살립니다. 그런데 이 간단하고 쉬운 말을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잘 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차동엽 신부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왜 경상도분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못 할까요? 그렇게 씩씩한 분들이 말이에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그것은 그들에게 ‘사랑해’라는 말이 ‘외국어’이기 때문이에요. 평생 한 번도 입술을 통해 발음해 보지 못한 단어이기 때문에 입술에 길도 안 나 있고 발음도 안 돼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기에 상대를 위하여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으면, 이 말을 마치 영어 단어 외우듯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신부님 말처럼 남을 살리는 말을 ‘생각’만 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표현되지 않은 말은 생각에 머물지만, 표현된 말은 현실로 구현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끝으로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사계절의 기도󰡕 중에 있는 ‘말을 위한 기도’를 읽어드림으로써 제 증언을 마치고자 합니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道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 좀 더 분별 있는 /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