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마당 > 설교

설교

카테고리 2021년
제목 [10.24]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 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1-10-24
조회수 28
첨부파일
p211024_질그릇 1단.pdf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23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24그러나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25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26예수는 이러한 제사장으로 우리에게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진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27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 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어도 율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7:23-28)

 

히브리서를 다시 자세히 읽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본문도 히브리서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역사적 예수를 전공한 저로서는 히브리서 증언이 매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증언을 준비하기에 앞서 히브리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신약성서 학자인 마커스 보그(Marcus Borg)󰡔말씀의 진화󰡕(Evolution of the Word)라는 책에서 히브리서를 소개하면서 예외적으로 풍부하다”(exceptionally rich)라고 평가했는데,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문장이 수려하고, 논리가 정연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성서를 잘 알고 있고, 유대교의 제도와 전통에 대한 이해도 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이용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봐도 그렇습니다. 성서일과표가 제시한 오늘의 본문이 일부여서 그렇지,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이다를 논증하는 히브리서 7장의 결론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논증은 크게 보면 히브리서 414절부터 1039절까지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는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이다

신약의 다른 문서들과는 달리,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대제사장’(great high priest)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냥 대제사장이 아니고,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이라고 꼭 집어서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구약성서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모세의 형 아론의 후손인 레위 지파가 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고, 따라서 유다 지파 출신입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 출신인 예수님이 대제사장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에서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닌 특별한 제사장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바로 멜기세덱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본문(5:1-10)에서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을 잇는 대제사장임을 선포했고(5:6.10), 오늘의 본문을 포함한 71절로 1018절에서는 예수님에게서 완성된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직을 자세히 해설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첫째는 연약함입니다. 지난 주일의 본문이었던 히브리서 51-3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각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에 임명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의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2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휘말려 있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는 무지한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그는 백성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연약함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5:1-3)

 

대제사장은 백성들 가운데서 뽑힌 사람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합니다. 또 한 해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므로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하지만 그런 제사장도 연약한 백성과 연약한 자기 자신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칩니다. 하지만 완전한 속죄는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101절 이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1해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더라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하여진 뒤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겠습니까? 4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습니다. 11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10:1-2.4.11)

 

하지만 아론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다릅니다. 먼저 예수님이 대제사장임이라는 선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41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14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15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16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 죄가 없으신연약함이 없으신 예수님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고, 또한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제사장직을 완전하게 수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본문이었던 히브리서 57-10절은 이렇게 증언했던 것입니다.

 

7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어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8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을 겪고 그분께 완전하게 복종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것을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보충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7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 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어도 율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7:27-28)

 

이렇듯 예수님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연약함이 없는 완전하고 영원한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10:10). (이렇듯)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10:18)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성찰

이처럼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세오경에서 단 한 번 등장하고(14:18- 22), 부활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1104절에 다시 한번 언급되는 멜기세덱의 인물탐구를 지렛대 삼아 예수님의 제사장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갑니다.

첫째,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입니다(7:2). 멜기세덱이라는 이름 자체가 정의의 왕(멜렉-세덱)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리고 그는 살렘의 왕, 곧 평화의 왕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살렘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같은 자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연결은 메시아의 출현을 알립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면 메시아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85:10). 그러니까 예수님이야말로 구원을 가져다주신 참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둘째,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구약의 중요한 인물은 족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고, 모세오경 그 어디에도 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73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이러한 멜기세덱을 예수님 편에서 보자면,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불멸의 생명에 들어가실 때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맡은 것이 됩니다. 그래서 716-17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6그는 제사장의 혈통에 대해서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셨습니다. 17그를 두고서 말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한 증언이 있습니다.

 

셋째, 멜기세덱은 레위 제사장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축복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제사장을 배출한 레위 지파의 조상이면서도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레위 제사장직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한 표시입니다(7:6-10). 축복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고(7:7),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들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손을 거쳐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기 때문입니다(7:9).

더구나 레위 제사장들은 모두 죽었으니 멜기세덱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이어받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누리시는 예수님만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맹세까지 하시면서 이를 확인하십니다. 7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20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21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맹세하셨으니, 주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하셨습니다.

 

대제사장직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이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직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논증합니다. 첫째,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다 죽게 마련이어서 제사장직을 계속 수행하려면 수많은 제사장들이 연이어 나와야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사시는 분이므로 혼자서 제사장직을 영구적으로 수행하십니다(7:24-25).

둘째, (앞서 말했듯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먼저 자기네 죄를, 그 다음에 백성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날마다 희생제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도 죄도 없으신 분이므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희생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고 오직 백성을 위해서만 바칩니다. , 예수님은 희생제물을 날마다 바칠 필요 없이 단 한 번에 당신 자신을 흠 없이 깨끗한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이 일을 한 번에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7:26-28). 이 첫째와 둘째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셋째,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사람이 세운 성막에서 봉직하지만, 예수님은 하늘 성전의 일을 맡아보십니다. 그리하여 넷째, 예수님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새 언약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이 셋째와 넷째가 오늘 본문에 바로 이어지는 8장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상의 네 가지, 곧 제사장직, 속죄 제물, 성전, 언약에 관한 생각이 91절로 1018절에 좀 더 자세하게 반복되어 나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위의 네 가지 요소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완성된다고 천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영원하고 위대한 대제사장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예수님이 새로운 중보자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더는 성전 체제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도, 희생제물도, 성전도, 옛 언약도 다 필요 없다. 그런 것들은 예수님 때문에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라”(12:2)는 것입니다. “(죄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라”(12:1)는 것입니다. 그 길은 성문 밖으로 나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13:1-19 참조). 히브리서의 결론인 131절 이하는 그 제사가 어떤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시오. 2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3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되,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도 몸이 있는 사람이니,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4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5돈을 사랑함이 없이 살아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12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16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는 중보자인 예수님 빽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랬듯이 우리도 자신을 제물로 바치라고나누고 섬기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닮고 따르고 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제가 오늘 증언 제목을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Who is Jesus for us?”입니다. 이 물음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기초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예수는 누구였는가? Who was Jesus for them?”만 묻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was)의 예수만 묻지 않습니다. 언제나 현재(is)의 예수를 묻습니다. 이는 역사적 예수탐구의 목표가 예수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넘어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고 또한 운명입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이와 관련하여 여러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현재 삶에 주는 함축적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226)

 

기독교의 구조는 그때의 예수를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기독교는 시대마다 반복해서 그때의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최선의 역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며, 또 이것을 기초로 해서 그러한 재구성이 오늘날의 그리스도로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예수󰡕 293)

 

기독교는 언제나 되풀이하고 되풀이해서 역사적 예수를 자신들의 신앙의 그리스도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기독교 신앙> 토론 중에서)

 

그 구체적인 증거가 사복음서입니다. 각 복음서는 각각 A.D. 20년대로 돌아가 역사적 예수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70년대, 80년대, 90년대, 100년대에 자기 공동체에 의미가 있는 예수를 말합니다. 복음서는 아니지만, 히브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때 그곳의 공동체에서 의미가 있던 예수를 영원하고 위대한 대제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증언했고 또한 그 고백을 몸과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우리 공동체에 의미가 있는 예수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나가야 할 성문 밖은 어디입니까? 우리가 드려야 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는 무엇입니까? 이 물음을 진지하게 묻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옛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맞게 새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문자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함께 행동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