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1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그들이 받는 고통은 후에 받을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 뜻에 맞는 사람들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6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을 번제물로 받아들이셨다. 7하느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 그들은 빛을 내고 짚단이 탈 때 튀기는 불꽃처럼 퍼질 것이다. 8그들은 민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주님이 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다. 9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안에서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뽑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외경 지혜서 3:1-9)

성도추모주일

오늘 예배 시작 ‘안내’ 시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 교회는 매년 대림절 둘째 주일을 ‘성도추모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에게 성도추모주일은 많이 낯설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교회도 이번이 겨우 두 번째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와 서구의 개신교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성도추모주일을 지켜왔지만, ‘성도추모’를 ‘조상숭배’로 오해한 한국의 개신교회는 이 전통을 배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에 많은 교우가 소천하면서 우리 교회는 1년에 한 번 성도추모주일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 시기를 서구의 개신교회가 성도추모주일로 지키고 있는 11월 첫째 주일이 아닌 매년 대림절 둘째 주일로 정했습니다. 11월 첫째 주일은 이미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추모의 범위도 2019년에는 처음으로 지켰기 때문에 그해에 소천한 성도들뿐 아니라 2006년 이후에 소천한 성도들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평가회 때 우리 교회 교우가 아니었더라도 교우가 신청한 분들도 포함하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추모의 범위를 ‘① 그해 소천한 성도, ② 역대 담임목사 및 사모 중 소천한 분, ③ 교우가 신청한 분’으로 정했습니다. 이 범위를 작년부터 적용하기로 했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린 관계로 성도추모주일을 지키지 못해 올해 처음으로 적용했습니다. 광고 부족으로 올해 ‘추모 신청’을 하지 못한 분은 내년에는 꼭 신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추모주일’(All Saints Sunday)의 유래

제가 재작년 첫 예배 때 성도추모주일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아마 다 잊으셨을 것 같아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톨릭교회와 서구의 개신교회는 매년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로 지킵니다. 이날은 켈트족의 민간신앙이 가톨릭교회에 의해서 토착화된—기독교적으로 재해석되어 수용된 것입니다. 켈트족은 매년 11월 1일에 새해와 겨울이 시작된다고 보았고, 이날을 기점으로 저승 문이 열려 죽은 사람의 영혼과 악마들이 이승으로 올라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0월 31일에 ‘삼하인’(Samhain)이라는 이름의 축제를 열어 죽은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악령과 악마들이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자신을 꾸몄습니다. 이후 가톨릭교회가 켈트족이 살던 아일랜드에 전파된 6세기 무렵에, 이 축제는 ‘할로윈’(Halloween)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교회에 흡수됩니다. 그리고 835년경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모든 성인의 날’을 5월 13일에서 11월 1일로 변경했는데, 이후 할로윈은 ‘모든 성인의 날 전야제’(All Hallows’ Day evening)로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구의 개신교회도 가톨릭교회의 전례를 따라 매년 11월 1일이나 11월 첫째 주일에 ‘All Saints (Sun)Day’를 지킵니다. 그런데 이를 우리말로 의역해서 ‘성도추모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의역에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원래 ‘All Saints Day’, 즉 ‘모든 성인의 날’의 초점은 ‘추모’(memorial)에 있지 않고 ‘성인 혹은 성도’(Saints)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연합감리교회(UMC)는 ‘All Saints Day’를 ‘만인성도주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위령(慰靈)의 날’과 융합?

그런데 ‘All Saints Day’를 ‘성도추모주일’로 번역하게 된 배경에는 가톨릭교회가 지키는 ‘위령(慰靈)의 날’이 융합된 듯합니다. 가톨릭교회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로 지키고, 다음 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All soul's day)로 지킵니다. 나아가 11월 한 달을 ‘위령의 달’로 지킵니다.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이 ‘성인’을 기억하는 날이라면, 11월 2일 ‘위령의 날’은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가톨릭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연옥 교리’에서 왔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煉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위령의 날’은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이 하루빨리 정화되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16세기 ‘교회개혁’(Reformation) 당시 문제가 되었던 ‘면죄부’는 바로 ‘연옥’에 있던 영혼을 ‘천국’으로 가게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교회개혁 이후 개신교회는 연옥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신을 담아서 ‘All Saints Day’를 ‘성도추모주일’로 번역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All Saints Day’는 우리를 ‘성도’로 불러주셔서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가 부활의 몸으로 천국에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이고, ‘성도추모주일’은 신앙의 길을 걷다가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가신 성도들과 그들의 믿음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의 길을 잘 감당하기를 결심하는 주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의인은 죽지 않는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표가 제시한 구약의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인 대림절 첫째 주일부터 교회력의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도추모주일은 그 이전인 11월 첫째 주일이기에 ‘다해’ (Year C)가 아닌 ‘나해’(Year B) 본문을 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경인 ‘지혜서’가 본문이 됐습니다. ‘외경’(外經)은 ‘정경’(正經)에 속하지 않는 경전(經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가짜 경전을 뜻하는 ‘위경’(僞經)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의 종파에 따라 외경을 성경에 포함하기도 하고, 포함하지 않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은 외경을 제2경전이라 부르며 성경에 포함하고, 개신교는 외경을 성경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에 유익하다고 하여 ‘경전 밖에 있는 경전’, 즉 외경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Wisdom of Solomon)라고도 불리는 ‘지혜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집필연대 주전 50년경). 그 주제는 ‘의인은 죽지 않는다’(1:15)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뜻이고,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 신앙과 그 생각의 뿌리가 같습니다. 특별히 지혜서는 지혜를 정의와 하나로 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사는 삶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삶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정의를 참으로 실천하면 반드시 해방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를 실천하는 의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죽지 않습니다. 죽음을 통해 의인은 불멸의 삶을 살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것을 설명하는 여러 구절 중 하나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실제적이며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을 낙엽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해마다 낙엽은 우리에게 생명의 무상성과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런데 저 나뭇잎은 단지 떨어지고 있는 것,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무엇으로 돌아갑니까? 낙엽귀근(落葉歸根). 뿌리로,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근원’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시작하는 곳입니다. 나뭇잎에게 죽음은 근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고 표현하는 것은 참 시적이면서도 영적입니다. ‘돌아감’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가을 낙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입니다. 그 문을 열고 이 세계로부터 나가는 것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물론 그 문 너머의 삶이 어떤 것일지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해설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든 생각을 짧게 전하고자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가 “의인은 죽지 않는다”고 번역한 지혜서 1장 15절을 가톨릭 새번역 성경은 “정의는 죽지 않는다(justice is undying)”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지혜서에서 지혜와 정의가 같은 말이고, 지혜의 추구는 정의의 실천과 구별되지 않기에, 정의로운 사람 즉 ‘의인은 죽지 않는다’를 ‘정의는 죽지 않는다’로 번역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정의와 사랑’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은 “사랑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에서 두 번째로 성도추모주일을 지키면서 떠오른 증언 제목이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였습니다. 이 말은 2016년에 김영봉 목사님이 펴낸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집’의 제목인데, 그보다 먼저 제가 1996년 안병무 선생님의 장례 기간에 했던 설교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습니다. 사랑이 남아있다면 죽음은 우리에게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생명(삶, life)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왜? 우리말 ‘사람’과 ‘삶’과 ‘사랑’은 어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비록 셋이지만, 동시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고인과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만나게 할 뿐입니다. 죽음은 끝도 아니고 소멸도 아니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입니다.”

작년에 성도추모주일을 지키지 못해서 오늘 작년과 올해 소천한 교우들을 함께 기억하며 추모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보니 백귀례 집사님이 작년 1월 7일에, 이어서 황명숙 권사님이 4월 11일에, 임기란 권사님이 6월 30일에, 박성수 권사님이 9월 29일에, 김재훈 장로님이 12월 1일에 각각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8월 12일에는 오세원 장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과 올해는 빈소에 가서 문상만 했지, 온 교우가 함께 배웅해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보면 우리 교회에 큰 덕을 끼치신 분들인데 그만한 대우를 못 해 드린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어제 증언을 준비하며 장례 때 드려졌던 추모기도문과 추모사를 하나하나 읽어보았습니다. 당시처럼 눈물이 다시 앞을 가렸고, 가신 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 여섯 분 모두는 가족 사랑, 교우 사랑, 교회 사랑, 하나님 사랑, 그리고 하나님 나라 사랑에 최고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갔어도 그분들의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각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공동체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한 멤버가 되는, re-member가 되는 날입니다. 다소 소원했다면 다시 공동체로 묶이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사랑을 되새기고 본받아서 우리도 그 사랑을 살아내기로 결단하는 날입니다. 그 사랑이 죽지 않으면 그 사람도 죽지 않습니다. 이 믿음으로 죽음을 넘어 부활의 삶을, 영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