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바쳐진 의의 연장

8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9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10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6:8-14)

하나님의 꿈과 그 실현 방법

오늘 우리는 ‘코로나19’로 연기했던 우리 교회의 창립 67주년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뜻깊은 주일에 그동안 우리 교회를 위해 헌신해 오신 ‘장로’ 한 분의 은퇴식과 새롭게 ‘권사’로 헌신하게 될 다섯 분의 임직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이 복된 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6장 8-14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임의로 고른 것이 아니라,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표가 제시한 것인데, 오늘 우리 예배에 꼭 알맞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로마서 연속 증언을 시작하면서, 로마서의 큰 주제가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개역개정).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뜻’(will)이,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가, 하나님의 ‘정의’(justice)가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죄와 불의로 고통받고 있는 인류를 먼 ‘미래’에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지금 여기에서’ 죄와 불의로부터 해방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꿈을 이스라엘의 옛사람들은 ‘종말론’(eschatology)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 종말론은 ‘세상의 종말’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악의 종말, 불의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즉, 종말론은 죄와 악으로 더럽혀진 이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여,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하신 창조의 첫 세상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종말론은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the Great Divine Cleanup of the Earth)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역자인가 대상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는 하나님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동역자(co-worker)가 되어 함께 해야 합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꿈의 실현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collaboration과 cooperation이 꼭 필요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동역할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이 교회공동체를 세워서 그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또한, 교회공동체 안에 여러 일꾼을 세우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교회를 하나님 나라 되게 하며, 그 모범을 교회 밖 세상으로 확산시킵니다.

따라서 만약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범, role model이 되지 못한다면, 교회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대 재생산이 아니라 교회라는 기관의 상장과 확산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세상에 아무리 많아져도 세상은 결코 하나님 나라로 바뀌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많아진 교회들 때문에 오히려 세상은 하나님 나라로 바뀌지 못합니다. 실제로 하나님 보시기에 교회가 세상 대청소의 동역자가 아니라, 세상 대청소의 대상이 된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16세기 가톨릭교회가 그랬었는데, 지금 한국 개신교회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세상 대청소의 주체입니까, 아니면 대상입니까?

교회창립 67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야 하고, 또 정직하게 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우리 교회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울제일교회는1953년 5월 17일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세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고자 애써왔다. 1950-60년대에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피난 온 사람들에게 품과 보금자리가 되어주었고, 1970-80년대에는 이 땅의 민주화, 인권, 통일을 위한 십자가 행진에 앞장서라는 명령에 성실히 답해 왔다. 또한, 1990년대 이후에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라는 명령에 응답해 왔으며, 현재도 "예수의 길을 따르는 신앙공동체"가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지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선교 동역자로 역할 하고자 애써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여러 일꾼이 자기 자리에서 맡은바 소명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기 소명을 잘 감당하는 비결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의의 도구, 죄의 도구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본문 바로 앞에 있는 ‘세례에 대한 설명’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세례 의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at-one-ment)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그런데 세례 의식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므로 물에 잠기면 죽습니다. 그렇게 물에 잠겨서 죽었다가 물 밖으로 나와서 부활한 삶을 살아가는 상징이 바로 세례 의식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죄에 대해 죽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롬 6:2).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울이 말한 ‘죄’는 언제나 ‘세상죄’를 가리키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구조악’입니다. 따라서 ‘죄에 대해서 죽었다’, ‘죄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조악’ 때문에 죽었고, ‘구조악’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제국’이라는 ‘구조악’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제 로마제국의 ‘힘’, 죄의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법이 산 사람에게나 적용되지 죽음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못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이렇듯 십자가 죽음 이후 예수 그리스도는 더는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부활의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더는 세상죄가, 구조악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는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흡수 통일된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1절에서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나에게 세상은, 세상 풍조는, 세상의 가치는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세상은 나에게 죽었고, 세상에게 나는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내 주(主)가 됩니다. 그러니 13절의 말씀대로 세상이 도구, ‘불의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 ‘의의 연장’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나를 누가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집니다. ‘사랑의 수녀회’를 만들어 빈민들을 돌보았던 마더 테레사는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보낼 사랑의 편지를 쓰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범이 되느냐, 아니면 세속 기관 중의 하나가 되느냐는 누구 손에 들려있는가에 달렸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와 오늘 권사로 임직받는 분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의의 연장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