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1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4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6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계 21:1-6a)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드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

여러분, 매우 피곤하시지요? 그리고 화 많이 나시지요? 지난 12월 3일 밤늦게 일어난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온 국민이 지금까지도 노이로제와 수면 부족, 그리고 울화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어제 국회에서 여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투표하지 않고 그냥 퇴장해서 투표 인원수 미달로 탄핵소추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될 때는 너무나 허탈하고 짜증 나고 화가 치밀어서 참기 힘들었을 줄 압니다.

언론을 통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이번 비상계엄의 진실은, 대통령이 술에 취해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우발사건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야당이 다수인 국회의 해산과 정적의 제거를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한 쿠데타이고, 이를 위해 실제 국지전까지 유도하려 했다는 것 아닙니까? 평양 침투 무인기를 기획한 것도, 오물 풍선 원점 타격을 지시한 것도 다 계엄 명분을 쌓기 위해서 전 국방장관 김용현이 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의하고 지시한 내란의 수괴가 대통령인데, 여당은 그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 스스로 내란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아니 공범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 나라의 운전대를 맡긴 ‘주범’ 내지 ‘핵심 배후 세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국민 생명과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입니다. 미친놈을 운전대에서 끌어 내려야 그나마 안심인데, ‘국민의힘’은 ‘눈 가리고 아웅’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 시도를 막아낸 민주당과 민주시민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기 때문에 지지난 목요일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저는 제대로 쉬지 못해 감기가 안 나아 고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런 비상시국에 ‘성도추모주일’ 증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교단 총회에서는 이번 주일예배를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드릴 것을 요청했기에, 성도추모주일을 한 주 연기할 수도 없고, 고심 끝에 ‘성도추모주일예배’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를 합쳐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순서가 평소와 다릅니다. 언뜻 보면 오늘 예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드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가 됐습니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묘하게 어울리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울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 오늘 본문이 요한계시록 21장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천국’을 소망

‘성서일과’(RCL)가 성도추모주일 제2독서로 제시한 본문 말씀은 요한계시록 21장입니다. 가톨릭에서 ‘요한묵시록’이라 부르는 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에 수록된 ‘묵시문학’입니다. 두 주 전 본문이었던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 수록된 ‘묵시문학’이었습니다. ‘묵시’는 그리스어 ‘아포칼룹시스’(ἀποκάλυψις)에서 나온 단어로 ‘밝힘’, ‘폭로’, ‘계시’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예언’하고는 다른 데, 그 이유는 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하기

보다는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폭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묵시문학이 등장하였을 때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발할 수 없는 극심한 박해 상황이 펼쳐졌던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가 기록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입니다. 당시는 대제국을 세웠던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때로,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자신을 ‘제우스 신’의 현현이라고 일컬으며 유대교를 박해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는 기원후 ‘1세기 말 또는 2세기 초’인데, 당시 지중해 세계는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었고,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자천 타천 신이라 칭하며, 식민지 백성들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상황 속에서 황제숭배에 반대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요 주(主)로 고백해 박해받았던 상황에서 집필된 묵시문학입니다.

그러니까 묵시문학은 ‘디스토피아(dystopia)’가 현실로 펼쳐지는 상황 속에서 여러 상징을 이용해서 그 불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박해받는 이들에게 ‘유토피아(Utopia)’를 언급함으로써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문서입니다. 즉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버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다니엘서가 말한 유토피아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고,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과 성도추모주일

우리 교회는 매년 대림절 둘째 주일을 ‘성도추모주일’로 지키고 있는데,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총 네 주 동안 지키는 대림절은 ‘오신 예수’, 즉 ‘성탄과 초림’에 초점을 둔 주일이 있고, ‘오실 예수’, 즉 ‘종말과 재림’에 초점을 둔 주일이 있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는 ‘첫째와 둘째 주일’은 ‘종말과 재림’에 초점이 있고, 성탄절에 가까운 ‘셋째와 넷째 주일’은 ‘성탄과 초림’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종말과 재림’에 초점이 있는 주일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성서가 말하는 종말은 ‘세상의 종말’—‘the End of the World’를 뜻하지 않습니다. 악의 종말, 불의의 종말, 억압의 종말, 착취의 종말, 폭력의 종말을 뜻합니다. 애굽/이집트로부터 탈출해 가나안에 정착한 고대 이스라엘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세 대륙이 만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제국이 발흥하여 침략전쟁을 벌일 때마다 큰 피해를 봤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앗시리아, 바빌론, 그리스, 로마의 연이은 침략과 지배를 받았고, 자연스레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을 꿈꾸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목 놓아 기다린 ‘종말’입니다.

그런데 ‘종말’에는 이런 공동체적—집단적 종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종말도 있습니다. ‘죽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종말이라고 할 수 있고, 불교에서 말하듯이 ‘인생이 고(苦)’라면 죽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가지 큰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렇듯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공동체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은 서로 통합니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의 종말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절에 개인의 종말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성도추모주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마침 오늘 본문이 ‘새 하늘 새 땅’을 증언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입니다. 이 본문은 장례 예배 때 많이 읽힙니다. 그 이유는 고인이 영면할 천국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3절, 4절 말씀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로 상실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3b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4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계 21:3-4)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은 죽어서 갈 천국에 대한 묘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2절이 그 분명한 증거입니다.

2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1:2)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땅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현실”—‘하나님 나라’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는 재림—종말의 약속을 언급하고 있는 베드로전서 3장 13절의 말씀을 보아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벧후 3:13)

이 말씀은 공동체적 종말을 증언하고 있는 대림절 본문(나해 제2독서) 중 하나입니다. 더구나 성서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이사야서 65장 17절 이하를 보면 (요한계시록 21장은 이 말씀에서 온 것입니다)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으나, 오늘은 시간 관계상 소개하지 못하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탄핵이 추모다!

제가 앞에서 오늘 예배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드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주제가 묘하게 어울리는 면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비상계엄에서 비롯된 사태 때문에 드리는 오늘의 특별예배는 ‘사회 구원’를 위한 예배입니다. ‘짐승 같은 세상, 짐승이 다스리는 나라’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결단하는 예배입니다. 반면, 성도추모주일은 ‘개인 구원’을 위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성도와 가족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희구하며 위로받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서울제일교회 교우들은 죽어서 천국 가려고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바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이고, 천국은 ‘뒷순위’입니다. 그것은 서울제일교회를 섬기다가 앞서가신 목사님들, 사모님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서울제일교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드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가 특별히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추모하는 고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보수적으로 말해도 남겨진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나라가 기울어지는데 어찌 나만, 우리 가족만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 기울어지는 나라를 바로 세워야만 나도, 가족도 안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올해는 죄송하지만, 고인을—특별히 올해 갑자기 하나님 품에 안긴 윤주삼 권사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야기를 따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돌연히 이별하고 아직도 커다란 상실의 아픔 때문에 고통 중에 계신 김경숙 권사님을 깊이 위로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외침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금쪽같은 가족을 잃고 차마 가슴에 묻지도 못한 이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탄핵이 추모다!” 우리 사회에 저들만큼 억울하고 상실의 고통이 큰 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저들의 외침이 남의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남북전쟁이 발발했다면 하는 상상을 하니 “탄핵이 추모다!”라는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성도추모주일을 맞아 고인들을 추모하러 오신 분들에게 좀 뜬금없고 외람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성령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탄핵이 진정한 추모다!”라고.

이 말씀 기억하시면서,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이 남기고 간 가족들을 그 가족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