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현대판 악마의 유혹

1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2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3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5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6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8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9그래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10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하였고 11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12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눅 4:1-12)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가대의 힘찬 찬양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어제 일로 매우 어이없고 황당하고 답답하고 분통 터졌던 마음이 크게 위로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어제 오후에 공수처와 경찰이 천신만고 끝에 체포하고, 검찰이 구속기소 했던 내란 수괴 윤석열이 석방되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가 구속 취소를 결정했고, 대검찰청이 ‘즉시 항고’를 포기하고 ‘석방 지휘’를 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을 취소하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검사는 7일 내 즉시 항고를 할 수 있고, 즉시 항고가 제기되면 재판에 대한 집행정지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즉, 검찰은 상급법원의 판단을 구해서 새로운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윤석열 석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찰청 수뇌부는 만장일치로 즉시 항고를 하지 않고 내란 수괴를 석방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석방되면 관계자 회유하고, 증거 인멸하고, 지지자 선동하여 온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 것이 뻔한데도 말입니다. 이것으로써 검찰 수뇌부가 내란 공범임이 명백해졌습니다. 또한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도 분명해졌습니다.

속히 탄핵이 인용되고, 야당이 집권하는 것만이 완전한 내란 종식의 길입니다. 그래서 내란 수괴와 중요 임무 종사자 그리고 단순 가담자 및 이번에 커밍아웃한 잔당들까지 모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앓고 있는 ‘내란성 스트레스 증후군’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넉넉히 이기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사순절 첫째 주일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부터 부활절 전날인 ‘성토요일’(Holy Saturday)까지 주일을 뺀 사십일의 기간입니다. 성서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내 산에서 기도했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호렙으로 가기 위해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40일을 걸어야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기 위해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공생활(公生活)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렇듯 성서 전통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항상 “중요한 일을 준비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순절이 지나면 곧바로 부활절입니다. 사순절은 바로 이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면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준비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죽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말은 아닐 테고, 부활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죽여야 할까요?

세 가지 유혹/욕망

‘성서일과’(RCL)는 매년 사순절 첫째 주일 복음 말씀으로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은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마가-누가 세 공관복음서 모두에 실려있습니다. 마가는 간단히 두 절만 소개하고 있고, 마태와 누가는 Q복음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10절 이상 길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총 11절, 누가는 총 13절)

그런데 마태의 이야기와 누가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유혹을 받은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광야에 계시던 40일 내내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40일을 금식한 후에 악마의 유혹을 받은 것으로 서술합니다. 둘째, 유혹의 순서가 다릅니다. 누가의 둘째 유혹과 셋째 유혹이 마태에는 셋째 유혹과 둘째 유혹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악마의 유혹은 세 가지였습니다. (1)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2) 내 앞에 엎드려 절해 보아라. (그러면 세계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3)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이 세 유혹의 공통점은 ‘욕망 채우기’입니다. ‘돌이 빵이 되게 하라’는 것은 ‘네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필요’를 다른 말로 하면 ‘욕망’이고, 욕망은 자기중심적이고 절제를 모릅니다.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리킵니다. 권력욕은 내가 높아지고, 내가 중심인물이 되려는 유혹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은 하나님을 너의 이익에 따라 조종하라는 유혹입니다. 즉 ‘모든 것을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다 똑같습니다. 바로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우선하고 나를 중심에 둡니다. 또한 욕망이 탐욕으로 자라나면,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인류가 제일 먼저 받았던 뱀/악마의 유혹은 하나님처럼 되려면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에 죽어야 할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욕망과 탐욕’입니다. 이것을 죽여야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작년 탈핵주일 증언

올해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은 마침 탈핵주일과 겹쳤습니다. 탈핵주일은 2011년에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NCCK가 탈핵이 하나님 창조 세계와 인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교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선교 과제임을 선언하고, 사고일인 3월 11일 직전 주일을 ‘탈핵주일로 지킬 것을 결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증언을 준비하면서 작년 탈핵주일 자료집을 위해서 썼던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전생의 기억처럼 다 잊으셨을 것 같아서, 기억을 되살려 드립니다. 증언 제목은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였습니다. ‘핵무기는 몰라도, 핵발전소까지 벗어나는 것이 옳은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핵의 ‘군사적 이용’(=핵무기)은 반대하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핵발전소)까지는 반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핵발전소 문제는 생명 문제요, 평화 문제요, 윤리 문제요, 안전 문제요, 과학 문제요, 경제 문제요, 기후위기 문제요, 민주주의 문제요, 근본적으로는 신앙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원고의 소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둘 다 반평화적이고 반생명적이다.

(2) 핵발전소는 비윤리적이고, 깨끗하지도 싸지도 않고, 차별적이다.

(3) 핵발전소는 폐쇄적이다.

(4) 핵발전은 이제는 이별해야 할 과학 기술이다.

(5) 왜 핵발전소를 당장 멈춰야 하는가?

(6)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투기를 중단해야 한다.

(7) 신앙으로 탈핵 운동에 나서자!

다시 읽어봐도 일타강사의 족집게 특강처럼 ‘탈핵’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잘 정리된 원고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시면 찾아서 꼭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핵—현대판 악마의 유혹

올해 탈핵주일을 증언 제목을 “핵—현대판 악마의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세 가지 유혹의 내용은 모두 다 똑같이 ‘욕망’이고, 욕망이 탐욕으로 자라나면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핵이 현대판 악마의 유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는 원자번호 1번인 수소입니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는 원자번호 92번인 우라늄입니다. 인간은 이 92번 원소 우라늄에서 플루토늄이라는 핵폭탄 원료를 추출했습니다. 그러니까 플루토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물질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난 1942년에 세계 최초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인공 원자로를 미국 시카고대학 운동장 한구석에 지으면서 스스로 ‘조물주’의 영역에 들어서게 됐다고 자부했습니다. 이렇듯 핵은 인간을 신의 자리에 앉힌 탐욕의 자식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핵폭탄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핵발전소로 수많은 생명을 서서히 살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아직도 핵발전소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풍요’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핵발전소 위에 세워진 풍요는 거짓 풍요입니다. 너무나 큰 비용을 청구하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은 인간을 신의 자리에 앉히는 불경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지금의 나만 위하는 이기적인 에너지입니다. 지금 사는 모두가 아닌, 일부만을 위한 것입니다. 핵폐기물은 지금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 더 큰 짐입니다. 방사능 오염은 관련 노동자와 지역민이 크게 피해를 봅니다.

특히 핵발전소는 기후위기에 취약할 뿐 아니라, 기후위기 유발자이기도 합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온배수가 해수 온도를 상승시키는 문제입니다. 핵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인데, 실제 내부 구조는 물을 끓이는 거대한 보일러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고, 핵발전소는 농축 우라늄을 핵분열시켜 물을 끓입니다. 물이 끓으면 증기가 되고, 그 증기로 발전기에 연결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사용한 증기는 냉각수로 식혀서 다시 사용합니다. 이때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데, 사용된 냉각수는 취수 전보다 7~9℃ 데워진 상태로 바다로 배출됩니다. 이것이 바로 온배수입니다. 핵발전소 1기에서 1초에 50~70톤이 나오는데, 이것이 해수의 온도를 높입니다. 실제로 고리핵발전소가 가동되기 전인 1970년에 인근 지역의 평균 수온은 15.27℃였습니다. 그런데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후인 1979년에는 16.18℃로, 4호기를 가동한 1990년에는 16.52℃로 높아졌습니다. 해양 온도 상승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시켜 기후위기를 더 가속합니다. 문제는 현재 동해안에 가동 중인 핵발전소가 총 18기라는 것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도 6기가 가동 중입니다. 게다가 일본 서해안에 있는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도 꽤 많습니다. 그 발전소들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온배수가 지금 동해를 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뜨거워지고 해류의 방향도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구온난화 때문에 바다가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발전소 온배수가 바다를 데우고, 나아가서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전기는 동해안에서 생산하는데, 그 전기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사용합니다. 또 그것을 끌어오기 위해 고압 송전탑을 건설해야 하고, 그 피해자는 전기 사용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지극히 수도권 중심적인 이기적인 에너지 수급 정책입니다. 이에 비해 태양광은 생산한 곳에서 소비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금식과 악마 이기기

사순절이 되면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금식합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고통에 참여하기 위해서이고, 또 음식을 절제하여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자선에 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전쟁에서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차단당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가 아무리 막강하고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먹지 못하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적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을 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금식하신 이유도 악마를 약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라고 증언합니다(1-2절). 그렇다면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나서 유혹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40일 ‘내내’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내려면 힘이 있어야 할 텐데 왜 예수님은 유혹받는 내내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을까요? 바로 금식이 유혹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금식하면 왜 악마가 약해질까요? 이는 악마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유혹은 내 안에 있는 욕망과 탐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었기에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은 내 안에서 나와 하나님을 갈라치기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고, 마침내 인간인 내가 신인 하나님 자리를 탐내게 합니다. 금식은 그 악마, 그 인간적 욕망을 굶어 죽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에도 우리는 탄소금식을 합니다. 이것 역시 현대판 악마의 유혹인 핵에너지에 대한 탐욕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나의 풍요가 주변부의 이웃과 미래 세대를 궁핍하게 하고 못살게 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탄소금식을 하며 그 악마와 풍요와 편리라는 욕망을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사순절 탄소금식으로 죽어야 산다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