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쳐다보아라!

1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2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3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5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6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7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8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10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11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12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17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18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창 15:1-12.17-18)

눈물샘 폭발 버튼

교우 여러분 그제와 어제 잠 잘 주무셨지요? 기분이 좋고 행복해서, 자기도 모르게 싱글벙글거리게 되지요?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했을 때 지난 123일간 우리를 괴롭혔던 ‘내란성 스트레스 증후군’은 다 치료되셨는지요? 저는 ‘내란성 증후군’은 완치되었는데, 새로운 병이 생겼습니다. ‘눈물(과다)흘림증’이 그것입니다. 원래 ‘안구건조증’ 때문에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흘렀는데, 언젠가부터는 호르몬 때문인지 마음이 조금만 뭉클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탄핵 집회”가 제 ‘눈물샘 폭발 버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공통점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둘은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벅찬 감격을 느끼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의 윗세대에 대한 헌사이자, 아랫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지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내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고 내 아들과 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공감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보게 되고, 감동하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는 ‘탄핵 촉구 촛불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1980년대 청년 학생 시절에 이 노래를 불렀을 때는 앞서 죽어간 광주 영령과 민주 열사를 떠올렸고, 나도 언젠가는 기꺼이 그들을 따라 순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앞서서 갔지만, 저는 이렇게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 목숨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고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새날은 아직 까마득히 멉니다. 하지만 젊은 날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면 과거—현재—미래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연결되고, 만감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납니다.

내란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우린 12.3 계엄 이후 지난 123일 동안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과거 죽은 자들의 실패 경험이 현재 살아있는 산 자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서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공 경험은 미래에 다음 세대가 더 큰 승리를 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후퇴하는 듯 보여도 점차 진보합니다. 그 진보된 세상을 상상하고, 그 세상을 만드는데 나도 작게나마 이바지했다고 생각하면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납니다.

폭싹 속았수다

여기서 잠시 영상 하나 보시겠습니다. ‘파면 선고’가 있던 그제 JTBC 뉴스 중 한 꼭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tY09syIckQ] 마지막에 한 여성이 한 말이 공감되시지요?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점 하나였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할 수 있었고, 그게 나였어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우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교회는 12.3 비상계엄 때부터가 아니라, 2022년 10월 29일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촛불행동”이 주관하는 토요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햇수로 4년째입니다. 그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교회 깃발을 들고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거의 매주 참석한 분도 있고, 자주 또는 가끔 참석한 분도 있습니다. 또 참석 못 한 분은 기도하고, 응원하고, 후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우 모두가 이번 일에 크든 작든 이바지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은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랍니다. 서울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그동안 “폭싹 속았수다”—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반대편에 서서 수고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니까 그제도 어제도 반대편 집회는 잘되지 않았답니다. 그동안 전광훈 씨나 손현보 씨가 교인들을 동원해서 탄핵 반대를 선동했지만, 그 마지막은 초라했습니다. 저들은 모여서 하나님께 자기편이 되어달라고 목놓아 소리치며 기도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저께 저녁에 열렸던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감사예배｣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하나님, 우리 편이 되어 주세요”라고 기도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일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섰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생명의 편에 섰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가 반대편에 섰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 편에 서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기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생명의 편에 섰기에 우리의 행진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만약 이번에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지 않았어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게 옳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옳기에 순교를 하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번 탄핵 정국에 미리 유서를 써서 공개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나는 불의한 결정에는 절대로 승복할 수 없다. 불의한 결정은 정당한 투쟁과 저항을 통해 바로잡는 것이지, 그것을 수용하고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윤석열-김건희의 세상이 다시 돌아온다면, 저항하는 시민들과 함께 맨 앞에서 맞서 싸우다 필요하면 죽을 것이다. (김요한 목사의 유서)

저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바라는 정의—평화—사랑—생명 세상을 이루지 못해도,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옳은 길을 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꺾이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불의와 분쟁과 폭력과 죽음의 세력은 힘이 세고 역사에서 잠시 이기는 듯 보여도 최후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생명의 편, 하나님의 편에 선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대에 안 되면 다음 세대 때, 다음 세대 때도 안 되면 그다음 세대 때,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면 언젠가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하고 말 것입니다. 나는 그 길고 긴 역사의 행렬에서 작은 점에 불과하겠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꺾이지 않고 그 길을 함께 걸은 것에 감사하며 보람을 느끼면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요 큰 상이다

오늘의 본문은 사순절 둘째 주일 구약 본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해당 주일의 복음서, 서신서, 구약 본문으로 이미 증언했으면 그 절기 중 다루지 않았던 본문을 찾아 증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필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계약”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 15장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은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14장에서 있었던 사건을 가리킵니다. 곧 동방에서 쳐들어온 왕들이 가나안이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을 포로로 끌고 갔을 때 아브라함이 사병을 이끌고 급습하여 구해 온 이야기입니다. 일이 마무리된 후, 아브라함이 자기 삶터로 돌아와 홀로 있을 때 주님이 환상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당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라”(창 12:2)는 하나님 명령을 좇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창 12:1)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낯선 땅 가나안에 겨우 몸 붙이고 살았습니다. 이렇듯 가나안 땅을 떠돌던 한 씨족의 족장에 지나지 않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종주국인 다섯 왕을 대항해 전쟁을 벌였으니, 그들의 보복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너의 방패다”라는 말로 당신이 친히 아브라함을 지켜주겠다고 힘주어 응원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을 보상이 ‘자손과 땅에 관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란 말을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내가 너에게 큰 상이다”라는 번역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만약 이 번역을 따른다면 본문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대뜸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본문 2절과 3절입니다.

2“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3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서 다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십니까? 저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축복한 지가 언제였습니까? 여러 차례 약속하셨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저에게 매우 큰 상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저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후사라고는 종 엘리에셀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매우 큰 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첫 번째 발언’입니다. 왜 아브라함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라는 ‘희망’의 말씀에 대해 ‘원망’으로 반응했을까요? 그 이유는 ‘희망은 멀리 있고, 절망은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경우에 멀리 있는 희망보다 가까이 있는 절망을 쉽게 선택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던 것입니다.

믿음을 의로 여겼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5절). 저는 예전에 이 말씀을 읽을 때 밤하늘에 별이 셀 수 없이 떠 있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의도와 광화문을 가득 메운 ‘빛의 혁명’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본문 6절은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고 증언합니다. 5절과 6절이 사이에 큰 비약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크게 생략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간주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히 믿었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즉 아브라함이 자신에게서 나올 수많은 후손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백성이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임을 믿었기에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을 때, 그 믿음이 의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것 아닙니까? 정의—평화—사랑—생명의 대동 세상을 전 세계적으로 이루는 것 아닙니까? 또 누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신약성서는 그것이 혈연이 아니라 믿음의 관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입으로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 7:21 참조) 그러니까 후손과 땅에 대한 언약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과 그들이 이룩할 새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는 말은 “아브람이 주님이 구원 계획,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믿고 그 실현을 위해서 일하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큰 상이다

이제 본문 7절부터는 땅에 대한 언약이 나옵니다. 그런데 앞에서 땅은 아브라함 후손 소유의 영토가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본문 9절부터 18절까지에 나오는 “피의 계약”입니다.

아브라함이 삼 년 된 짐승들을 반으로 잘라 마주 보게 놓은 것은 당대 가장 구속력 있던 “피의 계약 규정”을 따른 것입니다. 당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이루어졌던 피의 계약은 동물을 반으로 쪼개 놓고 그 사이로 계약의 두 당사자가 함께 걸어감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계약 당사자들이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함께 걸어간 것은, 만일 어느 한 편이 계약의 이행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쪼개진 짐승처럼 자기 목숨을 내놓겠다는 표현입니다. 즉 계약의 의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계약 체결의 두 당사자가 함께 쪼개진 동물 사이를 걸어가지 않고, 조공을 바치는 종속국가의 통치자만 그사이를 걸어갑니다. 절대적 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완전히 예외입니다. 계약 체결의 두 당사자, 곧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함께 지나가는 것도 아니요, 열등한 위치에 서 있는 당사자, 곧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홀로 쪼개진 동물 사이를 지나갑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이 약속이 안 지켜지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식으로 인간과 계약을 맺으셨을까요? 종말론에서 보듯이 인간의 시간으로는 너무 길고 그 실현이 지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꾸 변절자가 생깁니다. 멀리 있는 희망보다 가까이 있는 절망을 선택하거나, 힘든 정의—평화—사랑—생명의 길보다 쉬운 불의—분쟁—폭력—죽음의 길로 걸어갑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란 말을 원문으로 보면 “내가 너에게 큰 상이다”라는 번역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상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목숨이 우리에게 큰 상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가의 구원을 믿는 우리는 결코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 승리했지만, 혹시 다음에 패배할지라도 절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 목숨을 걸고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생명의 길을 하나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