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에서의 부활 체험

33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 사람은 그의 왼쪽에 달았다. 34[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눅 23:33-34)

2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 20:24-29)

의심하는 도마?

오늘 기쁘고 복된 부활절을 맞아 ‘죽임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기운’이 우리 모임 가운데 충만하기를 빕니다.

매년 부활절이면 우리 교회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 교우가 함께 예배합니다. 그래서 한 예배에 두 편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어린이 설교자가 정합니다. 주보 공간과 예배 시간을 고려해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도마 이야기’입니다. ‘도마’에게는 ‘의심’이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닙니다. 그리고 ‘의심’은 곧 ‘불신’으로 여겨집니다. ‘확신’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 <콘클라베>라는 화제작이 있습니다. ‘콘클라베(Conclave)’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추기경들이 모여서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cum’과 열쇠라는 뜻의 ‘clavis’에서 유래한 말로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합니다. 교황 선종 시 선거인단인 추기경들이 투표로 새 교황을 뽑을 때까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생활하면서 생겨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차기 교황 선거를 이끄는 추기경단장 ‘로렌스’인데, 그가 강론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포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용이 필요하며, 어떤 개인이나 세력도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로렌스 추기경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죄’라고 말합니다. 확신은 다양성과 통합과 포용을 깨뜨리기 때문이랍니다. 맞는 말 아닙니까? 확신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차별하고, 끝내 정죄합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一致)가 아니라 획일(劃一)을 추구하면 그것은 ‘파쇼’(fascio)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의심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의심을 죄나 시험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성경에 대한 의문들

저는 모태신앙인데, 교회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대부분의 한국 크리스천이 그렇듯이, 교회에서 배운 것에 대해서 질문이나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는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것이지, 스스로 탐구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얻는 방법은 ‘아멘’하는 대답이었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질문과 의심, 그것은 곧 불신앙을 뜻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하나의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질문을 한 경험이 전혀 없었고, 모순을 느껴 본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왜?’라고 질문하게 되면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던 성경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만 읽어봐도 모순이 발견됩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 또한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장에는 하나님께서 마치 옹기장이처럼 진흙을 빚어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창조의 ‘방법’이 다릅니다. 1장은 ‘말씀’이고, 2장은 ‘행위’입니다. 창조의 순서도 1장과 2장이 같지 않습니다. 1장은 사람에 앞서 동물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2장은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그다음에 동물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어떤 방법과 어떤 순서로 창조하신 걸까요?

또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의 서두를 보아도 모순이 발견됩니다. 거기에 실려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해서 요셉에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친아버지도 아닌 요셉의 족보가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렇듯 ‘왜?’라고 질문하며 성경을 읽으니까, 그때까지와는 다르게 수많은 모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신학을 공부하면서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제가 다닌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는 누구도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았고,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어쩌면 불경스럽게 들릴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제가 품었었던 의문을 한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정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라면, 성경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이란 동네의 어떤 과부의 외아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오빠 나사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예수님을 부활의 첫 케이스, 첫 열매라고 할까?”

“왜 부활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특히 자기를 잡아 죽인 빌라도나 대제사장들 앞에 나타나서 ‘내가 바로 너희들이 잡아다가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다. 너희가 나를 죽였지만 나는 다시 살아났다. 이래도 나를 못 믿겠느냐!’라고 호통을 쳐 봤다면 온 세상이 예수님께 굴복하고 곧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을 텐데….”

“도대체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를 쫓아다녔으면서도 부활한 예수님을 왜 몰라봤을까?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니고 단지 사흘 만에 부활했을 뿐인데…”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도마의 불신앙?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도마의 불신앙’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앞서 소개한 영화 대사처럼 ‘의심은 우리 신앙을 살아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저의 질문과 의심은 결국 성경의 부활 이야기를 ‘역사’가 아니라 ‘비유’로 보도록 했습니다. 비유의 ‘모델’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나 ‘탕자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비유를 읽을 때 사실성 여부에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실존 인물인지, 그런 사건이 진짜로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 이야기들을 비유로 본다는 것은 “그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를 어떻게 믿든 그 이야기들의 의미에 대해 말해보자”는 것입니다.

도마 이야기의 의미는 도마는 자기가 직접 부활한 예수를 경험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20:25)라는 도마의 말은 “나는 부활한 예수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만지고, 부활을 믿습니다. 즉 부활한 예수를 내가 직접 경험하고—체험하고 믿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부활을 체험함으로써, 부활을 신앙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기에서의 부활 체험

오늘 증언 제목을 “오늘 여기에서의 부활 체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주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부활에 대해서 여러 차례 증언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목격자는 사실은 부활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인이란 자기 삶으로 예수를 살아낸 사람을 가리킵니다. 로마제국 당국과 그와 야합한 유대교 성전 세력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낸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의 처형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프랜차이즈가 여기저기 세워지듯이, 곳곳으로 전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그 주역들이 바로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사람들을 그들의 모습에서 부활한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는 이런 부활의 증인이 무수히 많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고, 슈바이처 박사가 그랬고, 로메로 주교가 그랬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랬고, 테레사 수녀가 그랬고, 이태석 신부가 그랬고, 김장하 어른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자리에서 예수를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역할 모델로 우리를 부활의 증인으로 초대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살라고, Do What you can! 하라고 손짓합니다. 이렇듯 부활절은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로 초대하는 사건입니다.

특별히 도마 이야기에서 우리는 도마가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고 만지기를 원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못자국과 창자국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처형 때문에 난 상처입니다. 즉 세상죄, 구조악 때문에 입은 상처입니다. 앞서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그런 상처를 보듬었던 이들입니다. 그러면서 때때로 자기도 상처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마침 지난 수요일은 4.16 세월호참사 11주기였고, 어제 토요일은 4.19 혁명 65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 기념일들은 하나같이 상처 입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세상죄, 구조악의 희생자들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세상죄, 구조악을 폭로했습니다. 이 기념일들 역시 우리 시대의 세상죄와 구조악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가 당시의 상처입은 자들에게 손 내밀고 보듬고 벗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처럼 그렇게 살라고 초대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단은 오늘을 ‘장애인 주일’로 지킬 것을 권합니다. 그런데 장애계에서는 오늘을 단순히 ‘장애인을 배려하는 날’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없애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기를 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을 장애인 주일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 주일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장애인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배척받고 차별받고 정죄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연대하여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기뻐하는 동시에 오늘 여기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복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