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시민, 하나님의 가족

19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엡 2:19-22)

5월 가정의 달과 오이코스주일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 등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아서 ‘가정의 달’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둘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2023년부터 이 전통을 폐지하고, 매년 5월 첫째 주일을 ‘오이코스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이코스’(οἶκος)는 신약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어 단어로 ‘집’ (house)이나 그 집에 사는 ‘가족’(family)을 뜻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개인에게 발생한 중대하고 특별한 시간에 즉시 연락하여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행 16:25-34). 그러니까 ‘오이코스’는 ‘확대가족’이나 ‘대안가족’이었습니다. 그 옛날 로마제국 시대 바울의 교회가 바로 그랬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비록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서로서로 결핍과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과 공생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여러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가정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형태의 가정들은 어린이주일이나 어버이주일 같은 기존의 주일 때 소외감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5월 첫째 주일을 ‘오이코스주일’로 정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기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오이코스주일 찬송과 찬양

오이코스주일을 맞아 어떤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전하고 싶은 말을 찬송과 찬양에 담았습니다. 먼저 오늘 예배 때 부르는 찬송은 모두 ‘국악찬송’입니다. 따라 부르기만 해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신명이 납니다. 우리가 서울제일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게 이렇듯 기쁘고 신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것을 고백한 찬양이 오늘 성가대가 부른 <우리 교회>라는 노래입니다. 우리 함께 그 가사를 다시 볼까요?

주님 사랑 머무는 우리 교회는 오순도순 정다워라 하나님 나라

어제도 오늘도 웃음꽃 피는 해맑은 사람들이 하나입니다

주님 닮기 원하는 우리 교회는 좁은 길 따라가는 하나님 나라

슬픔도 기쁨도 감사함으로 서로 손 맞잡고 하나입니다

행함으로 헌신하는 우리 교회는 이웃을 내 몸같이 하나님 나라

사랑으로 웃음 짓는 그 향기 속에 어른도 아이들도 하나입니다

‘아멘’이 절로 터져 나오고 우리 바람을 그대로 표현한 참 좋은 가사입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감사찬송으로 부를 <모두 다 꽃이야>입니다. 이 곡은 찬송이 아니고, 유명한 국악 동요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동요가 그 어떤 찬송가보다 훌륭한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사를 읊어보면 노랫말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이 가슴을 묵직하게 울리고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립니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 당시에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재산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고, 배운 것도 없었고, 그래서 사회적 지위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존귀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류형선 선생은 오늘 여기서 아무 존재감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모두 다 꽃”이라고 “당신은 아름답고 귀한 존재”라고 일깨워주고 있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부를 찬송은 재작년에도 부른 <똑같은 건 없어요>라는 ‘어린이 찬송’입니다. 가사를 보실까요?

하나님 주신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어요 생긴 것도 달라요 마음도 달라요

하나님 주신 세상에 꼴찌도 일등도 없어요 서로 잘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나무도 꽃들도 길가에 돌멩이 하나도 똑같은 건 없어요 세상에 단 하나

우리는 모두 한 가족 하나님 안에 한 가족 달라서 더 소중한 주님의 한 가족

이 찬송도 앞서 본 <모두 다 꽃이야>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귀한 존재라는 것을 노래하지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 하나님의 가족은 무지개 백성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각각의 색깔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공동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하는 님’

지금까지 노래 가사를 통해 살펴본 ‘오이코스—대안 가족’은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이상을 어떻게 현실로 바꿀 수 있을까요? 피를 나눈 혈연 가족도 때로는 데면데면하고, 심지어 원수가 되기까지 하는데 말입니다. 그 답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 안에서’라는 말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짧은 두 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주님 안에서’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교회가 다른 공동체와 다르게 오이코스,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공동체를 만드는 촉매이십니다.

불경스럽다고 할지 몰라도 주님의 모습은 지렁이를 닮았습니다. 지렁이는 딱딱해진 흙을 헤집어 부드럽게 만들고, 그 흙을 삼킨 후 부드러운 분변토를 내놓아 땅을 기름지게 만듭니다. 주님은 그렇게 온몸으로 사람들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사이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면 미워하던 사람들도 화해하게 됩니다. 주님이 일하시면 원수도 죄인도 친구로 변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나 되게 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은 ‘하는 님’이다”라고 풀이하셨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이 말은 본질적인 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늘 뭔가 새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막힌 담을 허물게 하는 님’입니다. 주님은 ‘하나 되게 하는 님’입니다. 주님은 ‘서로 돕게 하는 님’입니다. 주님은 ‘나와 다른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포용하게 하는 님’입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게 하는 님’입니다. 주님은 ‘내 존재를 새로워지게 하는 님’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변합니다. 내가 변하고, 우리가 변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변하고, 우리 주변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핵심은 ‘주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나 좋을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 공동체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성전이 되고, 성령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우리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