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31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32[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33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34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 13:31-35)

예수님의 첫 번째 고별사

오늘은 ‘교회창립 7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예배 중에 한 분을 원로 권사로 추대하고, 세 분이 시무 권사로 임직하는 예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은 짧게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서일과’가 제시한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서 13장 31절로 35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 즉 ‘고별사’ 중 시작 부분입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다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나간 뒤에’ 고별사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영광’을 언급하신 후에, 이어서 당신의 ‘떠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31-33절). 그리고 본문 34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이유는 제자들은 당장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서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초로 해서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창립될 교회의 기본 정신이자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서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공동체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랑을 ‘명령’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감성적인 것으로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을 명령했습니다. 감성이 아닌 의지적 행위로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사랑하기 싫은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명령으로써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 지는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사랑’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alone(외로운)과 all one(모두 하나)의 차이

예전에 우리 교우들이 함께 읽었던 책 중에 여러 공동체를 소개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가 있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입니다. 그 책 부제가 말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오죽하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노래까지 있겠습니까? 이 노래는 가수 양희은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불렀는데, 가사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란 시에서 왔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 중에서

정호승 시인이 노래하듯 사람은 실존적으로 외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에게 돕는 짝을 창조해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함께하면 괴롭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alone’(외로운)과 ‘all one’(모두 하나)의 차이는 글자 하나 차입니다. L이란 글자가 있고 없고 입니다. L이란 글자를 Love의 약자로 보면, L이 있으면—사랑이 있으면 ‘모두 하나’가 되고, 없으면 ‘외로운’이 됩니다. 그러니까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사랑’입니다. 공동체는 ‘사랑’으로 비로소 유지됩니다.

‘사랑’이라 쓰고, ‘정의’라 읽는다!

공동체 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서 바울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14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연속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분열하고 갈등했는데, 이 분열과 갈등은 배척과 차별과 정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결코 세상에 속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풍조를 본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세상의 풍조였던 ‘로마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평화’가 교회의 ‘강령’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령은 “누구든지 (세례를 받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교회공동체 안)에서 살게 되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고”(고후 5:17), “그 안에서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고, 남자와 여자도 (차별이) 없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갈 3:28)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공동체는 그 ‘하나 됨’이 깨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울의 대답은 “성령의 최고 은사는 사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랑으로 하나 됨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이나 다 ‘사랑하라’고 말하고,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는데 왜 처형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이해한 사랑은, 개인들을 향해 마음 아파하는 연민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랑은 당시 세상을 다스리던 지배체제에 맞서는 것이었으며, 이 세상의 풍조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게 사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라 쓰고 정의라 읽는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사랑과 정의는 구별은 되지만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 즉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분리되면 우리는 둘 중 어떤 것도 갖지 못합니다. 둘 모두를 잃습니다. 단지 시체만 남습니다. 정의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는 사랑의 몸이고, 사랑은 정의의 혼입니다. 정의는 사랑의 육체이고, 사랑은 정의의 정신입니다. 그것들이 분리될 때, 우리는 둘 중 어떤 것도 갖지 못합니다. 둘 모두를 잃습니다. 단지 정신적인 시체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라 쓰고 정의라고 읽든지, 반대로 정의라 쓰고 사랑이라고 읽어야만 합니다. 사랑과 정의는 서로서로 보완하지 않으면 불완전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잔인하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공허합니다. 사랑은 정의의 내적 능력(internal empowerment)이며, 정의는 사랑의 외적 구체화(external embodiment)입니다. 사랑은 정의의 심장이며, 정의는 사랑의 사회적 형태입니다. 사랑이 정의이고, 정의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크로산은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시를 변형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Justice is Love, Love is Justice”—that is all we know on earth, and all we need to know. 정의는 사랑이고, 사랑이 정의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이며,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이다.” 그렇습니다. 정의와 사랑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든, 사회 공동체든, 그 공동체가 참된 공동체로 존속하려면 반드시 정의와 사랑, 사랑과 정의를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합니다. 균형이 깨지면 공동체도 깨집니다. 오늘 교회창립 72주년을 맞아 서울제일교회 지체 모두가, 특히 오늘 임직받는 권사님들 세 분이 이것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우리 서울제일교회를 참된 공동체로 존속시키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