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자

23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24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25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3:1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경계에 선 자

오늘 말씀의 제목은 ‘경계에 선 자’입니다. 먼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새는 깊은 숲 안에 많이 있을까요? 숲의 가장자리에 많이 있을까요?” 새는 숲의 가장자리에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숲의 안쪽에는 많지 않습니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새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숲의 가장자리는 새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이것이 가장자리입니다. 이 가장자리들이 만나는 공간이 곧 생태학에서 말하는 ‘경계’입니다. 숲과 논밭이 만나는 공간, 숲과 바다나 강, 계곡의 물이 만나는 공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계’는 지적측량에서 사용하는 선의 개념이지만,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경계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가장 잘 누리는 사람들이 농부입니다.

봄, 소비문화에 반기를 드는 ‘연결문화’

봄은 밭에 작물을 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나지 않습니다. 이때 농민들은 산과 들로 나물을 뜯으러 나갑니다. 밭에 아직 먹을 것이 없는 때, 자연은 사람들에게 양식을 선사합니다. 그것을 감사하게 먹습니다. 쑥이 지천이고 냉이꽃이 흐드러지게 펴있어도 직접 캐서 다듬고 씻어서 찬으로 먹는 것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어른들은 어렸을 때 해보신 분도 있을 테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얼마나 그런 과정을 겪어 보았을까요? 투명한 비닐봉지에 가격표가 붙여진 채 진열된 상품으로만 만나보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쑥과 냉이가 마트나 가게의 진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사라진 채 말입니다. ‘돈’만 내면 그 과정을 삭제하고 얻을 수 있다는 건 ‘자본’이 가진 폐해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소비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자랄까요? 혹시나 인간관계마저도 욕망으로 ‘소비’하지 않을까 크게 염려되기도 합니다.

이런 소비 중심의 문화에서 ‘생산문화’로 옮겨 가는 방법이 ‘농사’입니다. ‘농(農)’은 ‘생산을 위한 관계’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땅의 상태를 가늠해 보아야 하고, 외부의 환경인 날씨, 기후와 연결됩니다. 기르는 농작물의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소비문화’는 이런 연결점들을 ‘자본’으로 ‘절연’시키지만, 농사는 끊임없이 ‘연결’합니다. 씨앗에서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다시 씨앗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과 ‘연결하는 문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농(農)’은 ‘연결문화’를 지향합니다. 인간의 경작본능을 깨우는 것이 곧 기후변화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입니다.

여름, 너그러움이 필요한 때

농사란 인간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자율적인 행동에서 나온 자급을 위한 노동이자 가족과 이웃을 먹이는 고귀한 작업입니다. 메리 레이놀즈는 생명의 정원에서 이런 농사를 ‘너그럽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농사에는 지금 얼마나 ‘너그러움’이 남아 있을까요? 따스한 햇볕과 비를 주는 하늘에 대해, 식물을 키우는 땅에 대해, 먹는 인간에 대해 이 마음은 여전할까요? 과거 우리네 농사란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내 가족을 먹이는 농사는 너그럽습니다.

그러나 근대화는 농사의 ‘너그러움’을 버리도록 강요했습니다. 즉, 농사가 산업의 형태인 농업이 되었습니다. 농사는 도시를 먹이기 위한 ‘돌봄 농업’이 되었고, 농촌은 ‘소비지’를 위한 ‘생산기지’로 변모해 버렸습니다. 상품화되어 농산물의 규격, 맛과 모양을 맞추기 위해 비료와 농약 사용은 기본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거기에 익숙해 버렸습니다. 대규모 단작은 대형농기계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제철’ 농산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트에 가면 무엇이든지 구매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농촌은 농업시설을 확충해야 했고 농업은 자본을 위한 생산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농촌은 살만해졌을까요? 아닙니다. 농사일 뿐 아니라 가계 사정에 따라 다중경제활동을 합니다. 농자재 가격과 노동임금은 점차 오르지만, 판매가격은 그대로인지 오래입니다. 결국 촌부들의 노고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근교의 도시 한복판 지하상가에는 식물공장이라 불리는 스마트팜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각종 전자 장비와 LED 조명으로 채소가 키워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농지감소에 따른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지구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는 듯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거기에서 나오는 채소를 유기 인증을 받기 위한 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농사라는 행위에 영성이 필요하게 되었고 생명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가을,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시기

이반 일리치는 근대, 산업화의 문제를 지적하며 ‘conviviality’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고,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님은 이를 ‘공생공락(共生共樂)’,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사귐과 나눔이라는 의미에서 번역하셨습니다. 농촌은 도시를 받치는 힘이 쇠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도시는 농촌을 위해 ‘공생공락’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농촌도 생명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작더라도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시에는 민간이나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도시 텃밭이 곳곳에 있습니다. 농지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의 거리를 짧게 하는 것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일이자 농부의 마음과 공명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시 텃밭을 ‘상추 한 장의 혁명’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직접 길러 먹는 상추 한 장이 농촌의 대규모 단작과 과도한 비료 사용과 농약 사용을 줄여줍니다. 하지만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공원 한편에 있던 도시 텃밭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주변의 도시 텃밭을 지키고 옥상, 화단을 이용하여 텃밭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텃밭에 나온 것으로 채식 위주의 식단을 편성해 보는 건 어떨까요? 농촌의 축사 한 동을 줄이는 첫걸음이자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작은 실천방안이 될 것입니다. 삶의 전환을 꿈꾼다면 생태적인 귀농·귀촌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호미질에서 느끼는 흙의 감촉을 느껴봅시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농촌인구감소는 농지 상속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농지는 자경이 원칙입니다. 농지를 부동산 가치의 측면에서 보기 시작하면 ‘돈’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지의 가격 상승은 당연하고 농지를 구하려는 농민에겐 농지확보가 어렵게 됩니다. 또한 귀농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높은 진입 장벽이 생깁니다. 결국 점차 농지의 소유주와 경작자가 달라지는 농지가 많아지게 됩니다. 농지가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시민의 상속농지를 농민에게 환원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은 부모에게 상속받은 농지에 직접 농사를 짓는 일입니다.

문화적인 변화도 필요합니다. 특히 ‘골프’ 문화의 상승세는 좁은 땅을 가진 국토에서 맞지 않는 현상입니다. 결국 곳곳에 ‘녹색 사막’이라고 하는 골프장 건설 문제로 농촌사회는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농촌 풍광이 바뀌고 빛 공해, 고농도 농약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수질이 나빠져 농사에도 큰 타격입니다. 골프장 예정지 사람들은 매일 불안함과 시위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수요는 곧 사업의 공급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가 시급합니다.

원전뿐 아니라 대부분 발전소는 모두 도심지 외곽 지역에 있습니다. 이로 인한 송전선로의 문제뿐 아니라 농지 태양광 문제까지, 농촌은 경관파괴와 전자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사용처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일조권 때문에 안된다고 하지 말고 전기사용량을 줄이고 소형 태양광발전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겨울, 경계에 선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

1년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 살림을 돌아보며 밥을 먹는 동계를 엽니다. 서로의 안부도 묻고 마을의 크고 작은 안건들도 처리합니다. 안타까운 건 해마다 밥상의 수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재작년, 면에 있는 초등학교 두 곳 중 하나가 폐교되었습니다. 올해, 근처 두 면 단위 학교는 1학년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군내 어린이집들도 원아 모집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유입을 위해 지역교육청에서도 가족 단위 이주를 위한 주거단지를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착의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농업인구감소로 인한 빈 곳은 이미 외국인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축사와 비닐하우스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눈을 들어 보면 임야 곳곳에서 어린 숲 조성을 위해 일명 산판하는 곳이 즐비합니다. 대형 돈사, 골프장 반대에 대한 목소리는 도시에선 들어 볼 수 없는 소리입니다. 푸른 들녘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태양광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대형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이끌 사람을 고난의 한복판(이집트)에서 찾으시지 않고 변방에서 찾으시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두 공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지냈기 때문에 모세를 부르셨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의 생활상도 알았을 뿐 아니라, 도피하며 생활했던 미디안 광야의 생활도 알고 있는 것이지요. 후에 출애굽 할 때 히브리 백성들의 길잡이로서 그는 알맞은 인물이었던 것이죠.

“도시에만 살아서 저는 ‘농사’를 잘 몰라요” 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농촌외국인노동자의 피땀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주변에 있는 텃밭분양소를 찾아보고, 도시 농업하는 곳에 문을 두드려보십시오. 할 수 있다면 상속받은 토지에 직접 농사를 지어보십시오. 안된다면 농지를 마을 시세로 파십시오. 5도 2촌을 시작으로 귀농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듯이 “공중의 나는 새를 보는 것”, “들의 백합화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봅시다. 하나님은 도시와 농촌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거기에 우리가 함께 응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